열심히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시대
열심히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시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일은 열심히 하는데 왜 삶은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의문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특히 육체노동 현장에서 온몸으로 일하는 이들이 겪는 삶의 무게는 단지 임금의 많고 적음을 떠나 존재에 대한 인정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반면, 계약을 따고 영업을 하는 이들의 고충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식은땀을 흘리며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리스크를 안고 사는 그들 또한 또 다른 전선에서 버티는 중이다. 하지만 이 두 세계 사이에는 이해의 간극이 깊다.
댓글들 속에는 다양한 시선이 섞여 있다. “현장직도 능력 있으면 잘 벌고 집도 산다”, “영업직도 대가리 터지게 일한다”, “계약을 따야 현장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노동의 가치와 방식이 다를 뿐, 누구나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회사 망하면 노동자는 떠나면 되지만, 사장은 인생이 무너진다”는 말은 자본과 책임의 구조가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를 말해준다. 하지만 그런 구조를 모른 채 상대를 비하하거나 자신만의 고생을 절대화할 때 갈등은 커지기 마련이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하다는 말은 단지 노동의 대가가 적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그것은 구조적 진입장벽, 정보의 불균형, 출발선의 차이, 소비 방식의 왜곡이 만든 결과이기도 하다. “돈을 못 버는 게 아니라 돈을 못 모으는 거다”, “상위 20퍼센트만 돈을 번다”는 말은 무작정 열심히만으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반영한다. 일부는 “계약을 따내기까지의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고되며, 그것 또한 노동”이라며 수동적 노동과 기획·조율 노동 사이의 가치를 비교하지 말 것을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몸으로 버는 돈은 결국 한계가 있다’는 체념은 사회 전체에 무기력함을 전파한다.
결국 갈등은 ‘노동의 귀천’이 아니라, ‘노동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 장벽이 높아 보이는 기회, 성공을 위해서는 '비정상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반복되면서 좌절이 일상화된다. "기술을 가진 건설기능공도 충분히 부자다", "정말 가난해지는 건 소비를 통제하지 못하는 삶 때문이다"라는 말은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이 설 자리를 지키는 이들의 메시지다. 모두가 ‘굴리는 사람’이 되려 해서는 안 되고, ‘굴러도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도 설득력을 얻는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가난해질 수 있지만, 그 원인은 그 사람 개인이 아니라 사회구조다. 그러나 이를 깨닫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일하는 것에 더해, 더 나은 방향을 보는 눈을 기르고, 쓰는 법을 바꾸고, 구조를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부자가 되는 법은 몰라도 가난에 빠지지 않는 길은 함께 찾아야 한다. 그 길은 혼자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데서 시작된다.